TV와 다른 아프간파병 현지군생활(충격그자체)

한겨레 특보로 난 해당부대 통역관으로 제대한 한 예비역의 증언입니다….

——

나는 200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고 윤장호 병장이 근무하던 다산부대의 통역병으로 아프간 파병 생활을 했다. 윤 병장이 테러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바로 그 바그람 기지 정문에서 윤 병장이 수행하던 현지인 에스코트 임무를 여러차례 수행하기도 했으니, 그의 파병부대 선배인 셈이다.
아프간 파병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2004년 당시 한국 사회는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대테러 전쟁이라는 세계적 현상을 몸소 증언해보겠다는 젊은 혈기로 한국군 전세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차량으로 2시간 정도 거리인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6달 동안의 파병 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는 곧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하나둘씩 경험하게 됐다.

6달 파병생활 동안 전쟁의 추악한 진실 하나둘 경험
한국군 간부, 현지근로자에 ‘보석 사와라’ 소총 협박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동원된 젊은이들 데려와야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조악한 한국군 막사의 한켠에서 검은 기념비 하나를 발견했다. 이 비석은 한 한국군 장교의 순직을 무덤덤하게 기록해놓고 있었다. ‘대테러 작전 중 순국한 한국군을 기념한다’는 비문의 진실을 알아보니, 지난 2003년 1월 동의부대 소속 장교가 하급자인 다른 장교와 말다툼을 벌이다 하급자를 권총으로 쏘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한국군은 실탄 장전을 금지하는 내부규정을 만들어야 했다. 미군 주도의 아프간 대테러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군은 윤 병장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파병 생활 동안 탈레반의 간헐적인 로켓공격보다도 나를 더 괴롭힌 것은 ‘적’이 아니라 ‘우리’였다. 한국군 간부들의 통역을 전담했던 나는 경악스런 일에 종종 마주쳐야 했다. 다산부대에서 근무하는 현지 근로자들에게 ‘카불에서 진품 보석을 사오지 않으면 이 총으로 쏴 버리겠다’는 한 간부의 협박을 통역하면서, 한국군 소총 앞에 겁에 질린 현지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심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아프간 국민들에게 평화와 재건을 선사하기 위해 파병한다는 대의명분과 달리 나는 ‘점령군’으로서 ‘피지배자’들을 협박하고 모욕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돼야 했다. 학창시절 외세에 능욕당한 조상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 나에게 이런 한국군의 횡포는 통쾌함보다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한국군의 해외 파병이 정당했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했다가 엉뚱하게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동원되고 있는 수천명의 우리 젊은이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고국으로 데려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파병 장병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전쟁의 나락에서 여성과 약자의 가해자로 전락한 우리 젊은이들의 양심을 건사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하루 빨리 조국에 돌아와야 한다.

X성X/연세대 경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