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은 환경이 만들어 내었는가?

후세인은 어릴때 유복자로 불행하게 컸다.
그리고 젊을때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로 격렬한 투쟁에서 살아나기 위해 싸우면서 총상을 입으면서 탈출한다.

그리고 외세에 지배에 특히 영국에 횡포에 후세인은 어릴때 느끼고 자라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바트당에 몸을 던진다.
외세에 의존한 정권에게 저항하고 지도자를 암살하려다 잡혀 감옥에 있었지만 국회의원에 당선된 옥중당선될 정도로 국민에 신임을 받았다.

바라크대통령 아래서 실질적으로 후세인이 실권자였다.
후세인은 젊었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후세인이 대통령 기간 24년보다 32세부터 핵심이라서 부통령등 기간까지 합하면 38년간 이라크를 지도한게 맞다.

유네스코에서 문명퇴치로 상을 받고 이라크를 중동에서 경제최고국가 맹주로 키웠다.그래서 시라크현 프랑스대통령이 파리시장때 후세인을 만나 낙후된 이라크를 살린 걸 눈으로 확인하고 칭찬하였고 미국에 레이건대통령은 후세인에게 호감을 가져서 럼즈펠트를 이라크에 극파해 이란이라크전쟁때 물신양면으로 도와준다.

지금에 미국에 대량살상무기를 찾고 있고 이라크 기간산업을 폭격하는 것도 레이건미대통령 정부가 지원해준 자재이다.

이란혁명은 반미혁명이였다.팔레비왕조가 다스렸던 이란이 친미국가에서 반미국가가 된것은 백색혁명을 거부한 국민들에 전국적인 항쟁이였고 미대사관이 이란혁명분자들에게 점거당해 이란을 도와준 미국이 배신당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자 미국과 후세인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미국은 즉각 이란을 직접 치고 싶었지만 후세인이 대신 미국이 하고 싶은 것을 해주어 이란을 전격적으로 침공한다.
미국은 대대적인 지원을 후세인에게 쏟아붓는다.후세인이 왜 이란을 침공하는데 결정을 내린것은 같은 이슬람국가지만 이란은 민족이 다르다.
이라크는 아랍족 그리고 바빌론이란 나라가 유명한 뿌리다.그리고 이란은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를 쓰고 페르시아인이고 페르시아 나라가 과거 아랍과 원수지간이였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란의 98%가 시아파라서 이라크에 시아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그 보다 소수인 후세인 수니파정권은이런 역학과 배경때문에 시아파 이란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에 나라까지 확산될 것을 우려해 이란이라크 전쟁을 펼친다.또 자신을 암살하려던 음모의 마을을 초토화시킨다.

그리고 이란에게 독립을 약속받아 배신행위를 일삼은 쿠르드족을 학살했지만 그가 할일 중에 좋은 것은 팔레스타인해방을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서 큰소리친것이다. 어느 국가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큰소리 못쳤다.

아랍에서 1970년대 미국 이스라엘에 맞설 유일한 지도자로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 이후로 그를 지목한게 적중했다.나세르는 저항도 변변히 못했지만 특히 6일전쟁은 아랍에 자존심이 훼손당한 굴욕적인 패배였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집트 시리아가 못세운 자존심을 이라크를 지도하며 이라크를 중동에서 최고의 군사력을 만들어 미국과 이스라엘에 큰소리치며 아랍에 영웅으로 한때 떠올랐다.걸프전쟁 전에는 세계 군사력 4위 국가인 이라크를 무시 못했었다.그때 국방장관이 이라크를 영토까지 가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쿠웨이트만 해방시키고 철수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경제 제제와 폭격으로 인한 군사력은 이라크를 전에 막강함에 흠집을 내고 오합지졸이 되었지만 그래도 후세인은 망명하지 않고 미국과 결사항쟁을 하며 맞선다.그리고 사형당할 때도 의연하게 집행관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오히려 엄중하게 얘기할 정도로 투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죽었다.

네이버 검색에 들어가서 보니 후세인은 가난한 수니파로 자라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문명퇴치에 노력하였고 경제기반을 살리는데 일조했다고 나왔다.그러나 자신에 반대파는 삼대를 잔인하게 죽이는 자리 보존을 위한 결벽증까지 있었다.이른봐 어릴때 사무친 외세를 배격하고 자신에게 도전한 환경에 맞서 싸운 운명은 후세인은 자라면서 익힌 처세대로 행했던 것이 잔인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