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다 항구의 비극 -요코이야기 그후…

하카다 항구의 비극(1945년)

1.언제? 1945년 8월 일본항복후 90만명의 일본인이 일본으로 돌아갈때

2.누가? 강간범 한국남들이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가릴것 없이 일본인 여성 3만명이상

3.어떻게? 집단강간으로

4.왜?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자, 한국남들이 저지른 강간만행

역사에는 더럽고 추악한 사건이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 우리는 일본패전후 한국인에 의해 자행된

일본부녀자 집단강간사건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패전후 조선반도에서 대대적으로

일본인들은 쫓겨날 적에 제일 먼저 기착점이 되었던

큐슈의 하카타항구에는

큐슈 대학 의학부가 특별히 낙태소를 만들어

마취약도 없이 낙태수술을 시행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이유는 반도에 살고 있던 일본인이 전쟁에서 패했다고

무일푼으로 쫓겨날때,

성난 한국남들에 강간되어

임신된 더러운 한국놈들의 씨앗을 낙태하기 위해서였다.

추접하고 지저분한 강간범인 한국인 강간범들의 아이를 그대로 낳는 것은

자부심 강한 당시의 일본여인들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과 굴욕이었던 것이다·

당시 물자도 부족한 이유로 마취를 하지 않는 체

극심한 고통,실신, 굉장한 비명 속에서

낙태 수술이 다수 행해지던 하카다 항구는 생지옥이었다.

지금 위안부 문제를 일부러 왜곡해 사죄라든가 보상이라든가

문제를 지껄이고 있는 한국인들은

일본인 부녀자 강제 강간사건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시 일본으로 철수한 일본민간인 숫자는 약 90만명으로 추산된다.)

덧붙여서 이 낙태소에서는 3만명이 낙태 수술을 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강간하는 한국남들에게 폭행중에 중상 혹은 경상을 당하거나

성병에 감염 되거나 임신한 채로 배에 올라타 일본으로 향하는 도중에

몸을 던진 사람들도 포함시키면 한층 더 피해자는 증가된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이 사람들은 매춘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즉 일반인인 것이다.

이는 종군위안부 문제보다도 더 악랄한 극악무도한 강간이며

한국인들에 의해 자행된 악랄한 반인륜적 범죄였다.

지금이라도 일본정부는 진상을 조사하고

한국은 일본인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