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은 왜 반발만 사는가?

(펌) 정부의 정책은 왜 반발만 사는가?

정부가 시행하겠다는 정책치고 이해관계가 걸린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은 정책이 별로 없다. 스크린쿼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영화 의무상영일 수라고도 하는 스크린쿼터는 외국영화의 지나친 시장잠식을 막고 자국영화의 시장 확보가 용이하도록 자국영화의 보호와 육성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이러한 스크린쿼터제도가 정부가 현행의 절반 수준인 73일로 축소하겠다는 방안을 전격 발표해 영화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말부터 스크린쿼터 제에 대한 협상을 벌여왔으며 현행 연간 146일로 설정돼 있는 한국 영화의 의무상영일수를 73일 정도로 줄이기로 의견을 모았다면서 미국 측은 한미FTA 개시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와 소고기문제를 줄곧 거론해 왔었다.

스크린쿼터뿐만 아니다. 국제경쟁력강화를 위해 도입하겠다는 농업시장개방은 농민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반대하고 있고, 교육정책은 발표할 때마다 교육시민단체들로부터 반발을 사지 않은 예가 없을 정도다. 경제특구와 국제자유도시에서 시행하겠다는 영어공용화정책이 그렇고 교육시장개방이며 방과 후 학교 등 어느 것 하나 진정으로 전체국민의 권익을 고려한 정책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영화인들의 이익을 외면하고 체결을 강행하겠다는 한미FTA는 어떤가? 솔직히 말해 한미FTA이 체결되면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있는가?

물론 총체적이고 단기적인 차원에서는 국익이 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쌀 시장개방에서 볼 수 있듯이 쌀 시장을 개방한 대가로 공산품을 판매해 다소의 무역차액을 얻었다고 하자. 그러나 식량주권이 무너져 쌀을 시장가격에 맡긴다는 것은 국민의 생존권을 외국인의 손에 맡기는 꼴이 되고 만다. 가격이 폭등하면 쌀농사를 다시 지으면 될게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의 실패에서 불가능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정부정책이 전체 국민의 이익이 아닌 독점재벌이나 다국적 기업의 이익 내지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정부가 신자유주의정책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요 대세라고……. 그러나 지난 시기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한 급식조례를 놓고 보더라도 외국에서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얼마든지 자국농산물을 식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교육감이 앞장서서 WTO협정위반이라며 사법부에 제소해 웃음거리가 됐던 일이 있다. 이와 같이 정부가 전체국민의 이익을 외면하고 WTO 입장을 대변해 왔던 일은 뭐라고 변명할 수 있는가?

소득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총량적인 GDP 수치로 국민의 삶의 질을 말할 수 없다. GDP수치가 높다해도 10대 90의 양극화사회에서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과 상대적 빈곤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이제 국민들도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 날 때가 됐다. 총량적인 국민소득의 수치로는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 더구나 GDP라는 환상적인 수치는 자본투자며 증권투자 또는 로열티로 이윤이 해외로 유출되기 마련이다. GDP 수치로 환상적인 꿈을 꾸도록 만들어 민중을 침묵케 했던 독재 권력의 이데올로기는 유효시효가 지난 지 오래다.

국제사회에서는 정의나 도덕보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가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에 무조건 굴복을 강요하고 있는데 힘의 논리 앞에 자존심도 철학도 없는 시장개방은 주권의 포기에 다름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복리와 이익을 위하는 정부라면 눈앞의 이익이나 힘 앞에 굴복하는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민족의 자존과 국민의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 강대국의 힘 앞에 비굴하게 아첨하는 모습으로 어떻게 국민들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부끄러운 저자세로 국익을 외면하는 사대외교는 중단해야 한다.

김용택의 교육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