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쥐 에 관하여

 

영화 ‘박쥐’ 에 관하여


박쥐는 남의 피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 현대사회에서 박쥐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너무도 많다. 사람들은 다람쥐를 제외한 모든 쥐를 싫어한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나쁜 병을 전염시키고 밤이 되면 활동하고 더러운 환경에는 어김없이 활개를 치고 있는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왠지 먼 쥐들이다. 이런 쥐들이 날개를 달았다. 그 혐오스러움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박찬욱 감독 신작의 제목은 유쾌하지 않은 날아다니는 쥐에 관한 이야기다.

박쥐로 상징되는 흡혈귀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흡혈귀가 등장하는 영화가 없진 않았지만, 흡혈귀를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실험적인 도박영화이다.

서두에 도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유는 전편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상징성과 영화적 장치는 성공적이었지만, 10년을 준비한 시나리오치고 빈약한 서사와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에 뭔가 2%부족한 것을 관객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할 듯싶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은 인정해야겠는데, 좋았던 것부터 얘기해 보자.


우선, 영화에 나오는 벽지를 바꿨다.

‘올드보이’에서 성공한 반복 패턴의 벽지를 재탕하지 않고, 너무나 내츄럴한 것으로 변신했던 이미지를 재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상현(송강호)과 태주(김옥빈)를 운명적으로 이끈 신발이 의미하고 있는 존재감은 그래도 박쥐의 체면을 살려주기에 충분했다. 살다보면, 신발을 벗어주고 싶은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런 운명적인 여인의 고운 발을 차갑고 때론,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내가 감싸고 싶은 숙명이 느껴 질 때가 있다. 속설에 연인끼리 신발을 주고받는 것은 불길하다고 한다. 영화도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엔딩에서 상현의 신발을 신고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태주의 모습이 잔상으로 오래 남는다.

그리고 태주의 말 중에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태주도 흡혈귀가 되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만류하는 상현에게 반문하는 말인데, 나는 거기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피에 굶주린 흡혈귀가 사람을 죽이고 여우가 닭과 토끼를 잡아먹는 것은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합법으로 위장한 위선과 모략들이 생존과 무관하게 힘없는 자들을 짓밟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상현이 사제의 위치에서 욕정에 힘겨워 할 때, 허벅지를 내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나의 기억으로 피리로 두 번, 쇠자로 두 번을 가격하는데, 이 또한 영화의 중요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 간음을 하는 생각을 품은 것도 죄일 진데, 남의 아내 그것도 친구의 아내를 품고 있는 자신의 혐오스러움에 대한 스스로의 징벌일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무심코 보면, 스치고 지나갔을 오대수의 미용실 동창생의 다리 꼬기 장면이라고나 할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압권은 상현의 친구이자, 태주의 남편(신하균)을 물속에 수장시키고 돌아와서 느끼는 두 사람의 죄의식과 싸우는 혹은 피하는 묘사들인데, 상현과 태주가 성관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죽은 친구가 그 사이에 끼어있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에 해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구를 죽이고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아내와 새 인생을 시작하는 장치로 흰색 페인트와 형광등 불빛을 설정했다.  이상하리만치 많은 형광등의 배치와 흰색 복도는 마치 저주로 인해 에덴에서 버림받는 통과 의례 같은 것들일 것이다. 하여간 박 찬욱의 장기는 이런 상징성과 창의적인 장치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이제, 칭찬은 이쯤하고 영화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이야기 해보자.

우선, 서두에서 상현의 정신적인 갈등에 의하여 카톨릭 교단의 의학실험 대상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인간으로 욕망을 누르고 십계명대로 살아가는 사제의 육체적, 정신적 고뇌를 너무나 남의 얘기하듯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태주의 캐릭터는 말이 너무 많으면, 곤란했는데, 김 옥빈이 감당하기에는 대사의 분량이 너무 많았고, 감정표현도 쉽지 않았다. 이것은 예쁜 여배우들이 감당해야 하는 숙명인데, 뛰어난 외모로 배우가 됐지만, 그 외모 때문에 겪게 되는 한계인 것이다. 태주의 캐릭터는 성경에 나오는 아담을 죄에 빠뜨린 원인을 제공하는 이브이자, 뱀으로 변신한 사탄을 상징한다. 태주가 상현에게 했던 거짓말들은 그것을 입증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태주의 캐릭터는 처음에 상현에게 신발을 돌려 줄때까지의 감정은 순수했다고 ale고 싶다. 그 후에 관객들과 남편, 그 주변 인물들, 상현까지 속이고, 나중에는  스스로 흡혈귀가 되고자 하는 지독한 팜므파탈 이미지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 주변의 남자들과 모두 놀아 난 듯하다.

그렇다면, 김 옥빈이 소화해야 하는 성격은 다중인격자에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폭력에 시달린 백치미가 흐르는 나약한 여인, 거짓으로 동정심을 유발하여 남편을 죽이려는 악녀, 치명적인 관능미로 사제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탄, 흡혈귀의 초능력을 얻어 사람의 피를 갈구하는 악의 화신 등등…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불행하게도 태주에게서 어떤 유혹도 강하게 느끼질 못했다.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악마가 아니라, 사춘기 시절에 엉뚱한 짖을 일부러 하는 비행 청소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현은 그런, 소녀와 원조교제에 빠진 착한 은행원정도라고 할까?(반칙왕이 생각남)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 이 지점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소화하기에 김 옥빈은 절반만 성공했다고 하자. 그래도 온몸을 던지는 가능성이 많은 여배우를 건졌다는 생각은 든다.


태주의 시어머니(김해숙)는 개인적인 역할의 소화로 보면 완벽에 가깝다. 하지만, 능숙한 연기력에 비해 극에 녹아드는 흡입력에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배역에 비해서 너무 튀었거나, 텔레비전의 공중파에서 너무 알려진 배우를 캐스팅하여 영화 속 신비감이 떨어져서 일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상현(송강호)의 성기노출에 관한 견해인데, 나는 별로 거부감 없어 보였다.  자신의 거짓과 위선을 믿고 있는 신도들에게 조금은 충격적이지만, 가장 확실하게 죄를 짓는 상황을 보여주고 용서를 빌며 죽음을 맞이하려는 최선의 노력으로 느꼈다. 거기서 남성의 성기를 만인에게 보여준다고 함은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을 자신이 자처하는 모습일 것이다. 더구나 사제의 신분으로 여신도를 겁탈하려는 상황을 일부러 재연한 것은 극한의 상황에 처하여 치명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죽음의 정점으로 향하는 마무리 의식으로 보여 진다.

나는 오히려 극의 리얼리티를 위하여 상현이 여신도를 강간하려고 했다면, 분명히 발기가 되어 있는 상황이 맞을 텐데 현실은 지옥문 앞에서 떨고 있는 상현의 모습처럼 풀죽어 있는 성기가 안쓰럽게 보여 졌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다른 종의 동물보다도 더욱 다른 몸을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동서고금 거의 모든 종교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강조하고 실천하고자 하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주인공인 상현이 믿는 종교는 여인을 눈과 마음으로 음란하게 생각만 해도 죄가 입증되어 천국의 문 입구에서 전과조회가 이루어진다고 하니, 이 상태라면 회개라는 면죄부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거친 세상을 살다보니, 인터넷에서 노란머리, 파란머리 여인들이 넘쳐나서 공갈포는 가끔 쐈지만, 실제 실행해 보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미모와 공포를 겸비한 아내를 잘 만난 은혜라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다른 몸을 탐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상현을 보면서 그는 살아서 지옥을 살았구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