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추워

오늘은 도시가 가장 도시답지 않은 날이다. 화려한 색이 하얗게 덮인 날이다. 얼굴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이 무장하고 나와 서로 눈 치우며 인사하는 날이다. 거리의 주인이 자동차가 아닌 날이다. 눈을 치우며 청소부 아저씨의 노고를 몸소 체험할 수 있고, 20년 전 눈놀이 할 때 코 훌쩍 삼키며 맡았던 겨울 냄새를 떠올릴 수 있는 날이다. 동네 강아지와 아이들이 함박웃음 짓는 날이다. 좀 힘들지만 왠지 웃음이 나는 날이다. 타임머신을 탔다고 생각하고 즐겨보자. 20세기로 돌아간 느낌.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심심치 않게 나오는 재난 영화를 4D 영화관에서 공짜로 관람한다고 상상해보자. 내 눈앞에 눈이 쏟아지고 발가락은 꽁꽁 얼어버릴 것 같다.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니 재난 영화의 엑스트라가 된 듯한 기분이지 않은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늘은 도시가 가장 도시답지 않은 날이다. 이런 날은 하루쯤이라도 제발 도시인처럼 살지 말자. 44만원 세대인 동생, 아들딸들한테 전화 걸어 배달음식 시켜먹지 말자. 자기 밥은 자기 스스로 지어보자.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불꽃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절실한가. 따뜻한 방 안에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 나가기 싫다고 배달 시키면서 이 엄동설한에 두바퀴 오토바이 굴리는 사람 입장은 생각 안 하는가. 이런 날엔 신문이나 우유 안 왔다고 따지는 전화 걸지 말자. 신문 하루 안 본다고 나만 소식에 뒤처지는 거 아니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다. 신문, 우유 보급소에 전화하지 말고 후원 ARS 전화를 빗발치게 걸어 얼어붙은 사랑의 온도계의 얼음이나 깨주자.